"한류가 일본 정신을 흔들고 있다"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입력 2020-12-02 12:10   수정 2020-12-02 13:53

일본인처럼 자국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민족도 드물다. 황실 혈통이 단 한 번도 단절된 적이 없다는 ‘만세일계의 천황’이란 담론 앞에선 김씨 일가의 ‘백두혈통’은 명함도 못 내민다.

‘일본은 특별하다’는 집단주의적 사고는 좌, 우 정파를 가리지 않는 공통된 정서다. 그들을 한 궤로 묶는 것은 ‘아름다운 나라’라는 개념이다. 『피크 재팬』의 저자인 브래드 글로서먼은 일본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의 심리는 꽤 오래된 계보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1920년대 이시바시 단잔과 그를 추종하는 이들은 일본만이 누릴 수 있는 자연과 공동체로 회귀할 것을 주장했다. 반제국주의를 표방한 일본 공산주의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의 개념은 소(小)일본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

흥미로운 건 동일한 개념을 우파도 향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아름다운 나라로’라는 책을 직접 저술한 건 잘 알려진 얘기다. 아베류(類)가 주장하는 ‘아름다운 일본’은 1853년 페리 제독의 흑선에 의한 강제 개항 이래 일본이 달성한 전대미문의 성공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들은 전세계 시총의 3분의 1을 일본 기업이 차지했던 1980년대의 영화를 다시 한번 누리는데 혈안이 돼 있다. 대(大)일본론인 셈이다.

이 같은 인식의 근저엔 일본 문화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깔려 있다. ‘섬 나라 일본엔 영(靈)적인 무엇인가가 있다’, ‘일본은 외부 문화를 흡수해 무엇이든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류의 사고방식이다.

일본인의 자부심과 자존심에 상처를 낸 건 1990년대 이래 이어지고 있는 오랜 디플레이션이다. ‘잃어버린 20년’을 겪으며 일본은 더 이상 일류가 아닐 수 있음을 뼈저리게 절감했다.

요즘 일본에선 또 하나의 ‘상실 현상’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한류(韓流)로 인해 일본 정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일본의 시사 프로그램에선 자칭 전문가들이 출현해 “한류에 물들지 않은 이들은 50대 이상 남성 뿐”이라며 개탄한다고 한다.

일본 언론에선 10대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곳으로 코리아타운이 있는 도쿄의 신오쿠보가 선정됐다는 내용을 천지개벽처럼 보도할 정도다. 신오쿠보를 지난달 다녀왔다는 한 한국인 블로거는 한국마트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적었다. “일본 손님들로 엄청 붐빈다. 이번에 갔을 때는 어떤 일본 손님이 ‘아~한국 다녀왔다’라며 만족하는 혼잣말을 들었다”

‘사랑의 불시착’이란 한국의 드라마 콘텐츠가 일본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극중 여주인공인 손혜진씨의 패션은 일본의 패셔니스타들이 따라하는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일본 젊은 세대의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한 동경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갈 수 없는 상황이 가고 싶다는 욕망을 오히려 키우고 있다는 얘기다.

오사카 KOTRA 무역관에 따르면 일본의 유명 패션 상업시설인 시부야109 운영회사가 최근 만 15∼24세 여성 600명을 대상으로 구매 선호도를 조사했는데, 다수의 한국산 제품이 상위권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국산 제품은 조사 부문 총 8개 중 드라마·방송, 화장품·스킨 케어, 패션 부문, 카페·음식 부문, 홈 카페 부문 등 5개에서 상위권에 포함됐다. 카페·음식 부문에서는 뚱카롱(2위)과 치즈김밥(4위)이, 홈 카페 부문에서는 달고나 커피(1위)와 한국식 양념치킨(4위)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백범 김구 선생은 “오로지 바라는 것은 문화의 힘”이라고 생전 유언을 남겼다. BTS, 블랙핑크, 영화 기생충 등 한국의 문화가 전세계를 호령하는 지금, 난공불락처럼 여겨지던 일본 소비 시장이 빗장을 스스로 열고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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